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사할린의 한인


 1. 사할린 섬

         사할린 섬은 북태평양 지역의 일본 홋카이도 위쪽, 오호츠크해에 위치하고 있으며 쿠릴열도와 함께 사할린 주를 이루고 있다.  인구는 50만 정도이며 한인들은 약 3만명(5.4%)으로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


2. 사할린 한인

         대부분은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되어 현지 탄광, 벌목장, 비행장 등 노역에 종사하다 전쟁 종료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인 피해자들의 후손이다

        일본은 1945년 태평양 전쟁 패배후 일본인들만 데리고 본국으로 철수하고 조선인들(당시 4만 추정)은 방치하여 그들은 코르사코프항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다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한국과 소련은 자유-공산 진영의 냉전구도에 의한 이념대립으로 상호교류가 불가하여 소련내 사할린 한인들은 고국에서 잊혀져 갔고 일본도 무관심하였다

          러시아 한인동포 가운데 최가이’ ‘허가이등의 이름이 있는데 러시아 관료들이 공부를 정리하면서 한인들의 성이 가면 최가이’ ‘가면 허가이라고 등재한 결과다

         이처럼 한인 동포들은 러시아내에서 성씨가 이름을 대신하는 그런 대우를 받으며 고단한 삶을 이어나갔다


3. 사할린 한인의 정체성

 <시장에서 김치 등을 파는 한인동포>

          러시아 한인동포는 형성 배경과 성격에 따라 구분하면 본토(대) 고려인 사할린 한인 캄차트카 고려인으로 나눌수 있다

         본토(대륙) 고려인은 구한말 이후 자발적으로 한반도에서 넘어가 그곳에서 농사 등에 종사하며 거주한 한인이나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주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의미한다 

        캄차트카 고려인은 1947-48년 북한에서 캄차트카 건설노동자로 들어왔으나 이후 북한으로 귀국하지 않고 거주하게된 북한인들과 그 후손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사할린 한인은 우리가  러시아 동포를  통상적으로 부르는 (본토) 고려인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일제에 의해 사할린에 강제 동원된 한반도 출신 한인들과 그 후손들을 일컷는 말이다

       사할린 한인들은 스스로 한국(조선) 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으며 과거에도 한인(조선인)이었고 지금도 한인이라 하면서 스스로를 고려인이라 하지않고 한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은 한인 1(1945년 이전 출생자)들을 대부분 사망하거나 한국으로 영주 귀국해 현지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지금은 한인 2,3세들이 주류를 이룬다

       2-3세대로 내려 갈수록 한국어 구사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한국문화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4.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으로 한국과 소련의 교류가 가능해지자 우리정부의 사할린동포 접촉이 이루어 졌고 이후 한국, 일본, 러시아 3국의 협력 아래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사업이 시작되었다

         2000년에 대규모 사할린 한인 송환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한인 1세들의 대부분인 3500여명이 고국땅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5. 새고려신문

 ※ 1949년 창간된 <조선노동자>가 기원이며 1961년 <레닌의 길로>
 개칭되었다가 1990년 폐간된후 <새고려 신문>으로 새롭게 발간되었다

          

          1991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창간된 한국어 신문이다. 8쪽으로 된 <새고려신문>은 매주 금요일 1,500부씩 발행한다.(타블로이드판 주간지로 총8면 발행 - 한국어 5, 노어 3)

         사할린 한인에게 한국어 및 전통문화 보존과 민족 정체성을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6. 사할린 우리말 방송국

            사할린 국영텔레비전 방송국의 일부 시간을 할당받아 방송하고 있다

           현재 사할린의 유일한 소수 민족 언어 방송국이나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겨우 명백만 유지하고 있다


7. 사할린 한인문화센터


        한인문화센타는 1993년 12월 창립되었으며 문화센타 건물(사진)은 일본의 재정지원을 받아 04-06년 완공되어 한국어 및 전통문화태권도 등을 가르치며 민족 정체성 회복에 기여하고 있다


8. 코르사코프항 망향탑

<코르사코프항 망향의 탑>

         일제시대 일본군에 의해 강제징용되었다가 전쟁후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사할린 한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코르사코프항 망향의 언덕에 2007년 건립한 조각탑이다.

        스테인레스 파이프 두 개를 막 출발하려는 배 모양으로 만들어 세웠다



홍범도 장군과 연해주


      봉오동 전투로 잘 아려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이번 광복절(21.8.15)에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동묘지에서 고국땅으로 돌아왔습니


<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


       광복절을 맞아 홍범도 장군과 그 가족의 삶,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항일독림운동을 되돌아 보면서 그분들의 숭고한 노력과 희생에 대해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1910년 국권 상실후 안중근, 이동희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였고 블라디보스톡에는 신한촌(한인마을)이 생겨났으며 이를 거점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이 전개됩니다 


      홍범도 장군도 이무렵 연해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항일  무장독립투쟁에 가담하게 됩니다



  <1905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한인마을)>




 <1905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한인마을)>




<1920년 3.1운동 1주년, 신한촌에서 만든 독립문>



 <1920년 신한촌, 3.1운동 기념행진>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출생, 강원도 함경도에서 포수 생활을 하다 1907년 고종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항일 유격전을 전개합니다


        이후 1911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여 항일독립군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1920에는 중국 길림성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둡니다





      1922년에는 모스크바 극동민족회의에 참석하여 레닌에게 권총을 선물받고 전용차 앞에서 사진도 촬영합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가게되어 극장경비 등 고된 삶을 살다 1943년 76세로 사망, 공동묘지에 안장됩니다

 

【 홍범도 장군 가족의 불행 

       부인 이옥구 여사 : 1891년 홍범도 장군과 결혼, 아들 2명          을  두었으나 1908(40) 일제의 고문으로 순국

        장남 홍양순 : 1908년 일본군과 전투중 사망

        차남 홍용환 : 아버지와 함께 항일활동중 사망

        둘째부인 이인복 여사 : 1926년경 홍범도 장군과 재혼

      ※ 홍범도 장군은 이인복 여사와 재혼 당시 혼자였으며 이인복 여사는 남편과 낳은 딸 3명을 데리고 옴


【 홍범도 장군 유품  


 <김알라 손녀가 보관중인 홍범도 장군 유품>

        첫째 부인이 고문으로 사망하고 두 아들도 후손없이 사망,직계 가족은 없으며 이인복 여사가 재혼시 데리고 온 딸들의 후손(손자,손녀)은 현재 연해주와 카자흐스탄에 거주중입니다


        그중 김알라 손녀(80)는 홍범도 장군이 물려준 유품(레닌이 하사한 나무로 된 권총 지갑, 권총을 차고 찍은 사진, 문서보관첩)을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이 블라디보스톡 근무시 김알라 손녀를 찾아(2011~13년) 상기 홍범도 장군 유품을 독립기념관에 기중해 줄 것을 몇번 권유했으나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보훈처는 홍범도 장군과 재혼한 이인복 여사의 후손들(김알라 등)에 대해 홍범도 장군의 직접 혈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대우는 하지않고 있다 합니다.

 


2020년 8월 26일 수요일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항구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й вокзал и морской вокзал в г. Владивостоке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й вокзал во Владивостоке




블라디보스톡 기차역(모스크바 까지 9288km표지판)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й вокзал  (до Москвы 9288 км)





블라디보스톡-우수리스크간 운행 최초 열차 Первый поезд от Влалдивостока до Уссурийска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좌측 블라디역 최초 열차)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й вокзал во Владивостоке




블라디보스톡 기차역2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й вокзал во Владивостоке




블라디보스톡 기차역-공항간 전용열차 Аэроэкспресс (аэропорт – железнодорожный вокзал)





블라디보스톡 항구(морской вокзал в г. Владивостоке)


 

블라디보스톡 항구 선착장 морской вокзал в г. Владивостоке




블라디보스톡항구 DBS Cruse Ferry(동해-블라디보스톡 Донгхе-Владивосток)





블라디보스톡 항구 New Blue Ocean(속초-블라디보스톡,Сокчо--Владивосток)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Круизный лайнер Diamond Princess во Владивостоке




블라디보스톡 극동수산기술대 실습 범선 «팔라다»  Парусник «Паллада» учебного судна университета Дальрыбвтуз




블라디보스톡 국립해양대 실습 범선 «나제즈다» парусник учебного судна «Надежда» Мор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블라디보스톡 태평양함대사령부 앞 군함  Корвет перед штабом ТО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관광명소
블라디보스톡 잠수함 박물관




블라디보스톡 서커스극장 Владивостокский Цирк









블라디보스톡 서커스극장 Владивостокский Цирк





서커스극장 2층 복도 Коридор 2го этажа Цирка





서커스극장내 아린이 놀이터 детская площадка в Цирке





서커스극장 무대1 Цирковая арена






개막쇼 Шоу открытия




서커스극장 무대2 Цирковая арена




돌고래 쇼 Шоу дельфинов



물개 쇼 Шоу с морским котико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