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8일 수요일

홍범도 장군과 연해주


      봉오동 전투로 잘 아려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이번 광복절(21.8.15)에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동묘지에서 고국땅으로 돌아왔습니


<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홍범도 장군 묘역>


       광복절을 맞아 홍범도 장군과 그 가족의 삶,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항일독림운동을 되돌아 보면서 그분들의 숭고한 노력과 희생에 대해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1910년 국권 상실후 안중근, 이동희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였고 블라디보스톡에는 신한촌(한인마을)이 생겨났으며 이를 거점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이 전개됩니다 


      홍범도 장군도 이무렵 연해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항일  무장독립투쟁에 가담하게 됩니다



  <1905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한인마을)>




 <1905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한인마을)>




<1920년 3.1운동 1주년, 신한촌에서 만든 독립문>



 <1920년 신한촌, 3.1운동 기념행진>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에서 출생, 강원도 함경도에서 포수 생활을 하다 1907년 고종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항일 유격전을 전개합니다


        이후 1911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여 항일독립군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1920에는 중국 길림성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둡니다





      1922년에는 모스크바 극동민족회의에 참석하여 레닌에게 권총을 선물받고 전용차 앞에서 사진도 촬영합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가게되어 극장경비 등 고된 삶을 살다 1943년 76세로 사망, 공동묘지에 안장됩니다

 

【 홍범도 장군 가족의 불행 

       부인 이옥구 여사 : 1891년 홍범도 장군과 결혼, 아들 2명          을  두었으나 1908(40) 일제의 고문으로 순국

        장남 홍양순 : 1908년 일본군과 전투중 사망

        차남 홍용환 : 아버지와 함께 항일활동중 사망

        둘째부인 이인복 여사 : 1926년경 홍범도 장군과 재혼

      ※ 홍범도 장군은 이인복 여사와 재혼 당시 혼자였으며 이인복 여사는 남편과 낳은 딸 3명을 데리고 옴


【 홍범도 장군 유품  


 <김알라 손녀가 보관중인 홍범도 장군 유품>

        첫째 부인이 고문으로 사망하고 두 아들도 후손없이 사망,직계 가족은 없으며 이인복 여사가 재혼시 데리고 온 딸들의 후손(손자,손녀)은 현재 연해주와 카자흐스탄에 거주중입니다


        그중 김알라 손녀(80)는 홍범도 장군이 물려준 유품(레닌이 하사한 나무로 된 권총 지갑, 권총을 차고 찍은 사진, 문서보관첩)을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이 블라디보스톡 근무시 김알라 손녀를 찾아(2011~13년) 상기 홍범도 장군 유품을 독립기념관에 기중해 줄 것을 몇번 권유했으나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보훈처는 홍범도 장군과 재혼한 이인복 여사의 후손들(김알라 등)에 대해 홍범도 장군의 직접 혈육이 아니라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대우는 하지않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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